픽션

꽃잎이 흩날리다 / 무연 저 - 호위와 인형놀이

럽판타지 2022. 11. 1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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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은 검술에 재능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랬던 이가 고작 몇년 만에 이 정도 수준의 무인이 될 리가 없다. 결국 생각할 사람은 한 명뿐, 하지만 그마저도 속단할 수 없었다.
"거두기는 했지만 내 사람은 아니니 이를 어찌해야 하나?"
잡은 손에 얼굴을 묻으니 체향이 훅 밀려왔다. 타인의 체향이나 존재에 관심조차 없었지만, 손 안에 이의 체향이나 촉감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괜찮았다. 여인에 욕심이 없었기에 색에 관심조차 없었지만, 제 품에서 정신을 놓은 작은 호위는 그의 신경을 자꾸 건드렸다.
'괜찮기보다는 좀 위험한데.'
이를 세워 깨물면 달큼한 향이 훅 밀려올 것 같다. 손목에 코를 갖다 대니 달큼한 향은 좀 더 강해졌다. 피가 배어 나오도록 깨물면 이 작은 호위는 또 무슨 반응을 보일까? 반응을 보는 것도 재미날 것이다.
'네 존재가 나한테 이득이 될 리가 없을 텐데.'
이 존재가 도윤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변을 둘러싼 나라를 집어삼키는 것만으로는 그가 생각하는 강건한 주나라를 만들 순 없다. 춥고 추운 연국을 삼키고, 서문을 둘러싼 두 개의 나라를 삼킬수 있다면, 대륙에서 가장 큰 서문까지도 노릴 수 있다.
'곤란해.'
대업을 이루어야 할 그에게 연모는 물론이고 과거의 흔적 따위 필요 없다. 얼굴을 향해 다가가던 손이 비설의 목을 붙잡았다. 이대로 약간의 힘만 주면 비설의 목숨을 거두는 일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제 삶의 위협이 될 여인 하나 없애는 것은 일도 아니다. 도윤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긴 눈썹이 파르르 움직이면서 비설이 눈을 떴다.
"음."
눈을 마주치는 순간 손의 힘이 거짓말처럼 풀렸다. 살의를 띠고 있던 눈이 거짓말처럼 온기를 담고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잠에 취해 있던 눈이 초점을 맞춰 갈수록 동공은 커졌고 편안하게 내쉬던 숨이 멈추었다.
"폐, 폐하!"
"잘 잤는가?"
침상에서 도윤을 마주하자 무섭다 못해 눈앞이 하애졌다. 잠이 완전히 깬 도윤을 마주하고, 잠들기 직전의 상황이 아주 천천히 상기되자 입이 마르고 피가 식었다.
"어찌나 잘 자는지 깨울 생각도 못 하겠더군."
"그게 말입니다. "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방법을 찾던 비설이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미간을 옅게 좁혔다 어찌 되었든 도윤과 단둘이 있는 상황이었다. 잠들기 전까지는 이 사내를 죽일 방법이 너무나도 아득해서 울음을 터트렸었다. 바로 전까지 그랬건만 기회는 또 이렇게 바로 왔다.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도윤이 아주 잠시만 방심하면 된다. 비설의 손이 허리에서 허벅지로 천천히 움직였다. 허벅지에 숨겨 놓았던 단검이 손에 닿는 순간 주저는 결심이 되었다.
"잠들기 전의 일은 잊어 주십시오.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
"그거 알고 있나?"
이불 속에서 단검을 붙잡고 있는 비설의 손을 도윤이 붙잡았다. 살의라고는 전혀 담기지 않은 눈이었지만, 그 순간 온몸이 언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것입니까? 폐하."
잡았던 단검을 놓은 비설이 도윤을 보며 침착하게 되물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지만, 다행히 입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번에도 잘 넘길 수 있다.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놓아주십시오."
"넌 너무 쉽게 보여."
담담해 보이려 애쓰는 것과는 달리 내쉬는 숨은 흐트러져 있었다. 다른 이었다면 비설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권자에 오를 때까지 그가 익혀 온 것은 전부 이런 것뿐이었다.
'곤란하네.'
사내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어도 여인은 여인이었다. 손목에서 느꼈던 체향이, 도윤을 보며 흔들리는 눈동자가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던 이성을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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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님의 '꽃눈이 지다'와 연작입니다. '꽃눈이 지다'의 문원과 이현이 잠깐 등장합니다. '내 어린 호위님', '내 어여쁜 호위님' 이런 호칭은 밤에 집필하셨나. 손발이 오그라 듭니다. 하지만, 도윤의 일편단심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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