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루 | 하늘가리기 저 - 소문은 소문일 뿐

무은이 그녀를 자신에게 더 가까이 끌어당기려 했다. 힘을 주었더니 상처 부근에서 아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자 하영이 화들짝 놀랐다.
“많이 아프셔요?”
그녀가 무릎걸음으로 무은에게 바짝 다가갔다. 잔뜩 울상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짐승의 발톱에는 독이 있다던데, 덧나면 어쩝니까. 눈도 제대로 안 보이는 분이 왜 범에게 덤벼서…….”
하영은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이런 식으로 그의 약점을 들출 생각은 없었다.
“눈이 안 보인다니요? 누가요?”
무은이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영이 시무룩하여 대답했다.
“송구합니다. 서방님. 제가 크게 말실수를 하였습니다.”
“아니요, 부인.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몰라서 그럽니다. 내 눈은 아주 멀쩡합니다.”
하영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를 살폈다. 무은이 흉터가 진 자신의 눈을 만졌다.
“이 흉터 때문에 오해가 있었나 봅니다. 무슨 소문이라도 들으셨습니까?”
“……서방님께서 그러셨습니다.”
“내가요? 언제요?”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하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혼롓날 밤에…….”
무은은 기억을 더듬으며 인상을 썼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기억이 없었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습니까?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그랬다고요?”
“제가 불을 꺼 달라고 하였더니…… 서방님께서 보이지 않는다고…….”
말을 하면서 하영의 얼굴은 점점 더 붉게 물들었다.
미간을 찌푸린 무은이 기억이 났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손으로 방바닥이라도 두드릴 기세로 파안대소했다.
하영은 달아오른 얼굴에 손부채질했다. 추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자신이 그의 말을 잘못 이해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참을 웃고 나서 여전히 잔웃음이 남은 표정으로 무은이 말했다.
“불을 끄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영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항변했다.
“그게 어떻게 그런 뜻이 됩니까? 저는 그것도 모르고…….”
하영이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이제 목까지 붉어진 그녀를 보며 무은이 키득거렸다.
“때때로 불을 끄지 않아도 아무 말씀이 없으시길래 그걸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더 놀렸다가는 아내 얼굴에서 불이 날 것 같았다. 무은이 그녀를 품으로 끌어안았다.
“서방님. 팔을 막 움직이시면!”
“괜찮습니다. 가벼운 부상이라니까요.”
하영은 자신이 몸부림치면 자칫 그의 팔을 건드릴까 봐 움직이지 못했다. 여전히 듬직한 그의 품이 든든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시험 날까지는 다 나을 테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상한 몸을 추스르는 일이 먼저이지 시험이 대수입니까.”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영은 왠지 그가 얄미웠다. 자신만 발을 동동거리고 그는 만사태평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큰 부상이 아니니까 여유로운 모습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그놈의 호랑이는 다른 사람한테 사냥당하고 왜 화풀이를 엉뚱한 곳에 했단 말인가.’
하영은 이미 죽은 호랑이를 원망하다가 입술을 꽉 물고 내지를 뻔한 소리를 삼켰다.
‘……서방님이 잡으셨구나!’
범을 사냥한 사람은 무일이 아니라 무은이다. 그런 결론을 내리니까 모순이 없었다.
‘그런데 왜 아주버니가 잡았다고 소문이 났지? 마땅히 서방님의 공훈인데 왜……. 아!’
느루 | 하늘가리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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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마지막 여행이 끝나면', '위대한 소원'등을 지은 하늘가리기님의 한권짜리. 다른 소설에 비하면 습작처럼 짮지만 있을건 다 있는(?), 가볍게 읽기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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