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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 김신형 저 - 사막의 모레 바람에 한번 빠지면 못헤어 나와

럽판타지 2022. 11. 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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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됐습니다."
"......"
아산이 뭔가 말하는데 이명 때문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근무가 끝나면 정말 병원에 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서윤이 반쯤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물러가겠습니다."
구급상자를 챙겨 뒤를 돌았을 때, 단단한 팔이 서윤의 허리를 순식간에 감았다.
"으아......!"
쿵.
서윤이 들고 있는 구급상자가 대리석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안에 있던 내용물들이 중구난방으로 바닥을 굴렀다.
유일하게 바닥으로 구르지 않은 서윤은 어느새 아샨이 누웠던 바로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귀에서 들리는 이명 때문에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허를 찔렸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천장 대신 그녀를 위에서 내리누르고 있는 아샨의 얼굴이 보였다. 그제야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그녀의 고용주는 침대 위에서 뭘 걸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비켜 주십시오. "
아무리 눈앞의 남자가 환자 같지 않다 해도, 일단은 환자였다. 다짜고짜 무력을 쓰는 것보다 서윤이 정중하게 부탁했다. 사실, 무력을 쓴다 해도 아미 아샨의 실력을 알고 있기에 자신이 이긴다는 보장 따위 없었다. 그저 이 정중한 부탁을 듣고 정중하게 그가 장난을 그만하고 물러나길 바랄 뿐이었다. 두 뼘 정도 떨어져 있떤 아샨의 얼굴이 서윤의 얼굴 위로 내려왔다. 달이 구름에 가린 건지 때맞춰 방 안도 어둠이 드리워졌다. 온몸을 따갑게 찌르는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렇게 어둠 속에서 그와 마주 보았던 때가 있었다. 콧날이 닿을 듯 가까워지자 서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명은 그때까지 그녀의 신경을 긁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명과 뒤섞여 그의 말이 이번에는 똑똑히 들려왔다.
"너 귀 왜 그래."
서윤은 아샨의 멱살을 잡고 한 백번쯤 딸딸 흔든 뒤에 이게 다 너 때문이다! 라고 외쳐 주고 싶었다. 의사가 받지 말라는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이 왜 그러냐고 묻자 헛웃음만 나왔다.
"대답해."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서윤의 한쪽 눈꼬리가 여전히 쳐져 있음을 발견한 아샨이 되물었다.
"내가 네가 뭐라 말했지?"
"귀 왜 그러냐고......."
"그 전에."
듣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가 웅웅대는 소리 외에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지금도 아샨의 얼굴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게 아니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수 없었으리라. 짦은 단어 같은 말이었기에 되물어 볼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샨에게 자신의 약점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샨에겐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가 아니라, 적에게 약점을 들키는 기분이었다.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그게 이상하다고 느껴 서윤이 잠시 말을 하지 않자 아샨이 그녀의 귓볼을 깨물었다.
"내게 집중해."
그의 체취가 사향 냄새와 섞여 훅 끼쳐왔다. 진하고, 어둡고, 푸르다. 새벽이 오기 전 밤의 냄새가 났다. 귀 끝에 걸쳐진 숨결이 마른침을 삼키게 했다.
"못 들었습니다."
당최 뭐라고 말했는지 짐작도 못 하겠기에 서윤이 순순히 인정하며 말했다.
"밤새 내 곁에 있으라 했는데."
자신은 그 말을 무시하고 물러가겠다고 일어났으니 그가 눈치채는 게 당연하다. 그런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작 물러가겠다고 말했다니! 아샨도 그 점을 분명히 아는 듯 순순한 그녀가 이상했으리라.
"성희롱은 계약서에 포함되지 않았던 걸로 아는데요."
날이 밝으면 병원보다 먼저 노조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나저나 이곳에 노조가 있었던가.
"설마. 내가 너를 안길 원했다면, 밤새 곁에 있으라는 말보다 먼저 안았겠지."
이명이란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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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는 김신형님의 '시리아의 늑대'나 '블랙 레이디'보다 먼저 쓰여진 글인가? 그래도 밝은 편에 속한다. 김신형님의 글에 빠지면 이런 류만 찾게되는 중독이 있다. 걸크러쉬!!! 근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주 경호원 혹은 호위무사 소재에서 왜 보호받는 남주는 항상 더 강한걸까? 그러면서 경호원은 왜 두는건데? 어쨌든, 이분의 여주들은 너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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