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관계 | 달로 저 - 항상 잠이 문제
“너 언제까지 일할 거야?”
문득 흘러나온 말에 은오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만두면 좋겠어요?”
“아니. 그럼 내가 잠을 못 자잖아.”
“저 없었을 땐 어떻게 살았게요.”
“약 먹고, 못 자고. 그게 사람의 삶이냐. 짐승도 그렇겐 안 살아.”
솔직한 대답에 은오가 피식 소리 없이 웃었다.
“왜 웃어. 진심인데.”
“그냥……, 동생 생각나서요.”
요즘 해원을 보면 부쩍 양평 본가에서 누나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늦둥이 막내가 생각났다. 자기 전 손길을 기다리는 거나 머리만 내밀고 재워 달라 보채는 거나.
“저 동생 있거든요. 밑으로 둘.”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시선이 조용히 닿았다.
“막내 동생이 지금 열 살인데 제가 어릴 적부터 거의 키운 애예요.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거의 엄마처럼 붙어 키웠더니 아직도 잠 안 오면 절 그렇게 찾는대요. 잘 때 머리 쓸어주면서 노래 불러 줬거든요. 근데 갈 수가 없네. 여기도 머리 안 쓸어주면 잠 못 드는 애기가 있어서.”
“너 솔직히 말해봐. 어떡하면 나 엿 먹일까 고민하지?”
사납게 뱉으면서도 끝까지 머리는 안 뺀다.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었다.
“나중에 그 애기 만나러 가게 해줄게. 지금은 본분에 충실해.”
“네, 일단 재워 놓고 뭘 하더라도 하려고요.”
“나 재우고 뭐 할 건데?”
또다시 삐딱한 시선이 건너왔다. 은오는 그 시선을 곧게 응시했다.
“뭘 하든 주무시면 제 임무도 끝이니까 나머지 시간은 제 자유죠.”
“아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해원의 입에서 예상 밖의 답이 흘러나왔다.
“그럼 안 자.”
“그럼 저도 안 해요.”
그의 머리칼에서 손을 떼자, 무심한 음성에 힘이 실렸다.
“누구 마음대로 손 떼? 다시 위치로.”
반사적으로 다시 머리칼을 쥔 순간 그의 표정이 기분 좋게 풀렸다. 개도 아니고. 아니, 이건 너무 욕 같나. 개 같……, 아니 그 개 아니고.
“너 지금 속으로 개 같다고 생각했지.”
어떻게 알았을까. 유연하게 움직이던 손길이 그대로 멎었다.
“이거 봐. 틈만 나면 어떻게 엿 먹일까 고민한다니까.”
“음모예요.”
“나랑 있을 때 딴생각 금지.”
“금지는 진짜 많아.”
“투덜거리는 것도 금지.”
“그런다고 금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멍 때리는 것도, 딴생각도 다 금지. 나한테만 집중해.”
“안 그래도 맨날 하고 있거든요.”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붉은 입술이 휘어졌다. 남자인데도 예쁘게 붉은 입술. 그 입술을 망연히 응시하며 머리칼을 쓸었다.
“약은 아직도 먹는 거예요?”
“안 먹은 지 꽤 됐어. 너랑 잠들고 난 이후로.”
은오 덕분에 오랜 시간 복용하던 수면제를 끊고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정훈과 박 대표는 믿을 수 없다며 놀라워했다. 해원은 수년 간 수면제 없이는 절대로, 일 분 일 초도 잠을 청할 수 없는 심각한 수면장애 상태였다.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이 각성으로 나타난다. 그 각성은 감정적인 폭발로 이어지고 이후 불면증을 비롯한 감정 결핍으로 발현된다. 당연히 약물의 도움이 필요하고, 치료가 되지 않으면 생활이 무너지는 질환이었다. 그런 해원이 수면제 없이 잠이 든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다행이네요.”
그러나 너는 그게 기적이라는 걸 모르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은오에게 시선을 꽂아 넣은 채 잠시 그렇게 있었다.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온기만큼이나 시야 사이를 오가는 손길은 한없이 다정했다. 다정한 온기에 그만 눈꺼풀이 감긴다
개정판 | 부당한 관계 1권 | 달로 저
https://ridibooks.com/books/3667000477
--------------------------
달로님도 평타이상 하시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시죠. 과거와 현재가 얽히고 그러면서 두 주인공이 마음을 키우는 이야기. 2권까지 무난하게 읽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