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는 아저씨/더럽
“여름이.”
“…….”
“안 자는 것 다 알아.”
여름이 슬쩍 뒤돌아 누워 해건을 올려다봤다. 그가 매트리스 한쪽에 앉았다. 그의 무게를 따라서 싸구려 매트리스의 바깥쪽이 푹 꺼졌다.
“무릎 꺼내서 이거 발라.”
“안 해도 괜찮아요.”
“무서워?”
“뭐가요. 설마 제가 소독이 무서운 애인 줄 아세요?”
“여름이 애 맞는데. 주사도 싫어하고.”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수액 이야기 나왔을 때 어깨 떨렸어.”
“…….”
“아픈 것 아니야. 다리 꺼내.”
여름이 아직도 욱신거리는 두 다리를 꺼내었다. 무릎과 종아리의 꽤 넓은 부위가 까져 있었다. 해건이 짧게 한숨을 내쉬고선 그녀의 다리와 얼굴을 한 번 번갈아 보았다. 여름이 슬금슬금 그의 시선을 피했다.
“전 젊어서 그냥 두면 나아요.”
“알아.”
해건이 연고를 꺼내어 뚜껑을 뒤집어 입구를 땄다. 그러곤 흘러나오는 연고를 내밀었다.
“자.”
“제가 해요?”
“그럼. 내가 해?”
“그거……. 꼭 발라야 해요?”
여름의 눈이 흔들렸다. 연고 끝에 맺혀 있는 투명한 점액은 왠지 닿기만 해도 쓰라릴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물이 닿아서 욱신거리는데 꼭 저것까지 발라야 하나.
“여름이가 안 하면 내가 하고.”
“…….”
여름이 고개를 들어 해건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해건의 눈동자는 동양인치고도 유독 검었다. 불이 꺼진 방 안에서 두 사람은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구름 낀 낮의 희미한 빛에 의지해 시선으로 서로의 모습을 더듬었다.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왜일까. 그가 발라주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방의 온도가 조금 오른 듯했다. 이게 자신의 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머리는 펄펄 끓었고 무릎은 욱신거리는 와중에 다리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허벅지 안쪽의 느낌이 이상했다.
“며칠 전까지는 차 옆자리에도 못 타겠다더니. 집에 들이는 걸로도 모자라 이젠 연고까지 발라 달라고 하네.”
해건이 연고에 손가락 끝을 가져다 댔다. 투명한 연고가 그의 검지 끝에 맺혔다.
“우리가 친해진 건 좋은데 낯선 남자한테 그러면 못 써.”
“아빠 친구라면서요.”
“아빠 친구면, 만져도 돼?”
“……치료해주는 거잖아요. 면봉으로 살살 해주세요.”
“면봉 같은 것 없어.”
해건의 손가락이 무심하게 그녀의 무릎에 닿았다.
“아.”
아프지 않았는데 놀라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해건의 시선이 다시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여름이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의 눈매가 굳었다.
“아파?”
“아뇨.”
해건이 느리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정말 아프진 않았다. 이미 딱지가 앉은 자리라 그런지 아픔보다는 오히려 간지러움이 더 강했다. 상처의 범위가 꽤 넓어서 약을 발라야 할 부위가 컸다. 여름이 허벅지를 더 붙였다.
그녀가 흘끔 다시 고개를 들어 해건을 쳐다보았다.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녀의 상처를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고깃집도 그렇고, 이런 자취방도 그렇고 그와 만나는 장소는 온통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투성이다. 저렇게 무심한 얼굴로 직접 그녀의 무릎에 연고를 발라주는 행위도 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해건이 여름의 무릎에서 손가락을 뗐다.
“나머지는 네가 발라.”
“손에 뭐 묻히기 싫어요. 아저씨가 마저 해주세요.”
“하.”
해건이 미간을 살짝 모은 채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잘생겨서 여름은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그가 잠깐 틈을 두었다가 다시 그녀의 무릎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민망해진 여름이 시선을 피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느리게 상처 부위에 문질렸다. 왜일까. 다리 사이가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하체 안쪽이 조여드는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도 그에게 떨어지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손가락이 상처를 꾹 눌렀다.
“아야. 아저씨, 왜 눌러요.”
“눈 치워.”
“쳐다보는 것도 안 돼요?”
“안 돼.”
여름이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왜요. 아저씨 잘생겼잖아요. 잘생긴 남자를 쳐다보는 건 본능이래요.”
“닳아.”
“하긴, 거기서 더 깎이면 턱선에 베이겠다.”
해건이 픽 웃었다. 그 순간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선 넘는 아저씨 | 더럽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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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라는 호칭에 손발이 오그라 들고, 여주 아무것도 안했다는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깡패 싫어하는 여주의 강단을 강조하는 내용이 소설 초반에 길게 이어지지만, 항상 그렇듯이 소설은 소설일 뿐, 소설이 현실이 된다면 이거 왜 보겠냐고...넘나 잘생긴 정력적인 아저씨와 이쁘고 똑똑한 여대생의 불가사의(?)한 로맨스 판타지(판타지 로맨스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