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의 노래 | 황백설 저-반전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
또 농담을 하는 걸까… 하지만 캔을 반절 비우고 다시 연우에게 돌아온 눈빛은 장난기가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
“그리고 학위는 석사까지만 따. 내후년에 또 지방 법원으로 발령 날 텐데 괜히 너 박사 과정 들어갔다가 중간에 그만두면 아깝잖아.”
“……”
“주말 부부는 꿈도 꾸지 말고.”
윤환은 반 남은 맥주를 단번에 비우고 빈 캔을 와그작 찌그러뜨렸다. 무섭게 비워지는 캔을 멍하니 바라보던 연우는 문득 지금과 비슷했던 윤환을 떠올렸다.
“오빠, 어렸을 때 오빠가 내 과자 뺏어 먹었던 거 기억나?”
“그래서 시집 못 오겠다고?”
이맛살을 와락 찌푸린 윤환에게 연우는 입술을 깨물며 손을 내저었다.
어릴 적 윤환은 점심을 먹고 출출해질 때 즈음 연우가 좋아하는 과자 한 봉지를 뜯어주었다. 오독오독 연우가 과자를 먹고 있으면 옆에 앉아 물끄러미 보더니 이렇게 묻곤 했다.
‘서연우, 혼자서 아주 맛있게 먹네. 욕심쟁이처럼.’
그러면 연우는 깜짝 놀라 눈을 깜빡이며 손에 쥐고 있던 과자를 윤환의 입으로 옮겼다. 오빠 입에 한 개, 그리고 자신의 입에 한 개를, 번갈아 가며 부지런히 과자를 나르기 시작했다.
‘연우 한 개, 오빠 한 개야?’
‘응.’
‘아주 칼 같네, 서연우. 딱 반반씩 아주 계산적이야.’
연우는 동그란 눈을 더 원형이 되게 뜨며 이번에는 윤환의 입에 두 번씩 과자를 넣기 시작했다. 그러면 윤환은 치켜올라 가는 입가를 억지로 내리누르며 이렇게 물었다.
‘연우 하나 먹는 동안 오빠 두 개 주는 거야?’
‘응. 응.’
‘오빠에 대한 마음이 그 정도구나. 거기까지구나… 응, 잘 알았어, 연우 마음.’
낙담한 듯 윤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우의 강아지 같은 까만 동공이 출렁거렸다. 그리고는 봉지에 든 과자를 윤환의 입에만 넣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과자를 씹는 건지, 어금니를 꽉 물었는지 윤환의 턱이 움찔거렸다.
‘오빠 다 주는 거야?’
‘응!’
‘그럼 연우는 하나도 못 먹는데. 그래도 괜찮겠어?’
‘응. 과자보다 오빠가 더 좋아.’
‘……’
‘오빠… 화났어? 내가 너무 많이 먹었지….’
윤환은 왜인지 불그스름해진 눈가를 휘었다. 그리고는 이제 질린다며 연우 혼자 다 먹으라고 하였다. 손수 연우의 입에 과자를 넣어 주었다.
“그때 말이야. 나는 오빠가 진심으로 화난 줄 알았거든. 오빠가 과자를 엄청 좋아하는데 내가 모르고 먹어버렸구나 하고. 나중에 좀 크고서야 알았지. 오빠가 장난을 쳤다는 걸.”
“서연우 그때 참 귀여웠는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속길래 걱정은 좀 됐지만.”
연우는 소리 내어 웃고는 그 웃음 끝을 흐리며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러니까 오빠가 진심이라면 구청에 같이 가.”
“이야기가 왜 그렇게 연결이 되지.”
눈썹을 찌푸린 윤환에게 연우는 혼인신고서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때처럼 장난이 아닌 진심이면 가. 같이 가서 혼인신고 해.”
“……”
어린 윤환이 원한 것은 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둘 사이에는 과자 대신 혼인신고서가 놓여 있었다. 어린 그가 진심으로 원한 것이 과자가 아니었던 것처럼, 지금 윤환이 원하는 것은 법적인 절차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표정이 굳어 있던 윤환이 하, 짧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서연우, 다 컸네. 언제 이렇게 컸지.”
“이제 시집가도 되겠어?”
윤환은 식탁 가운데에 놓인 파일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잠시 생각해 빠진 듯 윤환의 시선이 흐려졌다. 툭, 투둑, 툭 서류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일정하지 않은 혼란스러운 리듬을 만들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윤환의 진심은 들을 수 없었다.
어린 양의 노래 | 황백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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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 이후부터 반전이 나오는데 최소 5개. 여주가 맹하게 묘사되는데 결국 대학원생의 진가를보여줌. 황백설님 글 더 찾아봐야 겠는데요. 완전 재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