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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픽션

모호성 방치와 의심 억제 해석

by 럽판타지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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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6>에서 네모 칸에 담긴 셋의 공통점은? 정답은 셋 다 모호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틀림없이 왼쪽에 있는 것은 A,B,C로, 오른쪽에 있는 것은 12,13,14로 읽겠지만, B와 13으로 읽은 것이 사실은 똑같다. 그러니까, A,13,C나 12,B,14로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게 읽는 사람은 없다. 왜 그럴까? 같은 것이라도 글자가 나오는 맥락에서는 글자로 읽고, 숫자가 나오는 맥락에서는 숫자로 읽는다. 전체 맥락은 각 요소를 해석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모호하게 생겼지만 우리는 그것의 정체를 속단하고, 그렇게 모호함을 해결한 뒤에는 애초해 모호했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다. 

 '은행'이 들어간 문장을 보면서는 아마도 건물 곳곳에 은행이 들어선 번화가를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한 모호한 문장이다. 만약 그 앞에 '가을이 무르익어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라는 문장이 있었다면 전혀 다른 장면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막 은행나무를 생각했다면, '은행'을 돈을 취급하는 은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명확한 맥락이 없는 상태에서 시스템 1은 자체적으로 그럴듯한 맥락을 만들었다. 맥락을 만든 것이 시스템 1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우리는 선택을 했었다는 사실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근처를 자주 지나치지 않은 이상, 은행 열매보다는 돈을 취급하는 은행을 본 적이 더 많을 테고, 우리는 이를 감안해 문장의 모호함을 해결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시스템 1이 답을 놓고 내기를 하는데, 내기의 바탕은 경험이다. 내기 규칙은 똑똑해서, 모호한 상황을 해석할 때는 최근 사건과 현재 맥락을 가장 중시한다. 최근 사건이 떠오르지 않으면, 좀 더 먼 기억에 의존한다. 어렸을 때 기억에 남았던 일을 떠올려보면 <ABC> 노래를 불렀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ABC라고 했지, A13C라고 하지는 않았다.

 두 가지 예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들은 결정적인 선택을 해놓고도 선택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오직 한 가지 해석만 머리에 떠오를 뿐, 모호성은 눈치채지 못한다. 시스템 1은 퇴짜 놓은 대안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거나 대안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기도 한다. 의식적인 의심은 시스템 1의 영역 밖이며, 그런 의심을 하려면 양립 불가능한 해석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데, 정신적 수고가 필요한 일이다. 불확실성과 의심은 시스템 2의 영역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대니얼 카너먼 저/ 이창신 옮김 /김영사) p. 127 ~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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