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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은밀한 나의 동거인 / 꽃제이 저 - 몰랐던 마음을 깨닫는 건 한순간

by 럽판타지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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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우리 혜민이는 결혼이 뭔지 모르는 것 같은데."
우리 혜민이?
경악한 표정의 그녀는 장 교수가 처방 내린 약에 문제가 생겼음을 확신했다.
"저기.... 혹시 충격이 커요? 나 놀리려고 한 건데, 결혼하겠다고 받아쳐서 막 나가기로 했어요? 솔직히 말해 봐요. 지금일도 무르는거...."
"혜민아."
제발 송혜민이라고 불러줘요. 미치겠으니까.
이 들척지근하게 들러붙는 기분을 털어내려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입으로 들어가는 대신, 그에게 빼앗겼다. 이수하는 아이스크림 스푼을 쪽 빨며 그녀를 응시했다.
졸지에 아이스크림을 먹여준 꼴이 되었다. 스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에 이수하의 입꼬리도 함께 비틀렸다.
"난 사생활에 간섭 안 한다고 했지. 우리의 부부관계까지 소홀하겠다고 한 적 없어."
"미쳤어."
"숙소? 좋아. 하지만 네가 숙소에 머물면 나도 머물 거야."
"돌았어? 비밀로 하자며!"
"당연히 비밀이어야지. 그걸 감추는 건 네 재량이야. 그리고..., 이미 큰아버지 회사에서 송림 대학병원으로 엄청난 금액이 후원됐어.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결혼 축하선물이잖아. 그거."
"...그래서?"
"이 결혼 이제 못 무른다는 거야. 소비자 보호법에 의거, 교환 환불의 기본인 14일이 지나 버렸다고."
"하!"
"게다가 편리한 결혼 하자며, 근데 그 편리함에 성육은 왜 빼. 그게 주가 될 텐데. 내가 먼저 남편의 의무를 다할 테니, 너도 아내의 의무를 다해. 그럼 우린 참 괜찮은 결혼생활을 하게 될 테니까."
혜민의 입이 떡 벌어졌다. 황망한 표정으로 할 말을 잃은 그녀의 빰에 긴 손가락이 닿는다. 그는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준 뒤, 그녀 뒤에 놓인 식탁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졸지에 그의 품에 갇혀버린 혜민의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수하 씨는... 나랑 키스 할 수 있어요?"
"응."
대답이 너무 빠르다.
그녀의 머릿속에 드라마 속 이수하의 모습이 순간 겹쳐졌다. 그것도 완벽한 타인과 키스하던 모습이. 그래, 이 남자에게 그 정도는 너무 쉽다.
"그럼 그, 그건요?"
"뭐, 섹스?"
"부부관계!"
"왜 못해.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부분데."
그녀는 이제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 자존심이 뭐기에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건 곧 죽어도 싫었다. 이 빌어먹을 나르시시스트.
한숨이 나오는 걸 가까스로 참으며 열이 오른빰을 쓸어내리는데, 상체를 숙여온 그가 나직하게 웃었다.
"나는 너랑 뭐든. 다 할 수 있어, 송혜민."
잘생긴 게 미쳐 버리기까지 한 것 같다.
"빨리 하지, 결혼."
정정. 확실히 미쳤다. 이수하는.

오늘 이수하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정만과 지수는 밴 뒷자리에 앉아 큭큭대는 수하를 미친놈 보듯 구경중이었다.
그냥 좋은게 아니라, 반쯤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찡그렸다가 웃었다가 조금은 울기까지 했다.
저런 모습을 팬들이 봤다간, 백만 안티가 생길지고 모른다는 생각에 정만은 부러 헛기침을 크게 했다.
"어험!"
그러자 상체를 숙이고 있던 이수하가 고개를 비틀어 정만을 바라본다.
"겁먹은 거 같아."
뜬금없기로는 세계 최고지.
정만이 알아듣게 설명하라는 듯 눈썹을 추어올린다. 그에 이수하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송혜민이 겁먹은것 같다고. 하여튼 오기 부리기는."
"...송혜민 씨 생각하면서 미친놈처럼 웃었다고!"
"어. 처음이었어. 울 것 같은 표정."
"...그게 좋았다?"
"응."
변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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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제이 님 소설 오랫만에 읽었는데, 대사를 실감나게 잘 쓰시는 듯합니다. 머릿속에 주인공들이 살아움직이는 것 같아요. 연예인 소재 소설이 많지만, 이것도 레전드가 아닐까. 우지혜님의 '비터스위트 루나틱스'나, 봉다미님의 '향기의 바람이 닿는 곳은'과 함께 탑 3에 놓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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