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실험이란 무엇인가?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 Gendankenseperiment은 가상의 상황을 이용하여 어떤 주장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사고실험은 경험적인 도구는 전혀 없이 순전히 생각만으로 실험을 진행한다. 실험실에서 비커를 관찰하는 과학자의 모습이 아니라 안락의자에 푹 파묻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사고실험을 하고 있는 철학자를 잘 그려준다.(p. 20)
사고실험의 얼개(사물의 짜임새나 구조)와 하는 일
철학의 사고실험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얼개로 되어 있다.
(1) 가상의 상황
(2) 가상이 상황의 평가
(3) 가상의 상황의 평가로부터 내려지는 결론
데카르트의 전지전능한 악마 사고실험을 예로 들어 보자. 가상의 상황은 실제로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부터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공상과학적인 이야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가능하다. 물론 전지전능한 악마는 실제로 일아날 수 없는 시나리오다. 그 다음에는 이 가상의 상황에 대한 평가가 이어진다. 그런 전지전능한 악마가 있다면 우리가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우리를 속일 것이라는 예측이 바로 그것이다. 이 악마는 전지전능할 뿐만 아니라 악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사고실험을 제시한 철학자는 그것으로부터 어떤 철학적인 결론을 내릴다. 이 경우에 데카르트는 언제든지 그렇게 속을 수 있으므로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이 사실은 확실하지 않다고 주장한다.(p.23)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자연법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그 일은 법칙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법치적으로 가능한 것이다.
- 훈이에게 노트북이 생겼다.
- 봉이가 대통력이 되었다.
- 송이가 중동의 부호와 결혼했다.
-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뉴욕에서 점심을 먹고 파리에서 저녁을 먹는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일들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일아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그 가능성은 각각의 경우 다르다...그 다음으로는 법칙적으로는 불가능하더라도 상상력을 발휘하면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법칙적으로 가능한 것은 당연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가령 다음 일들도 자연법칙에 어긋나지만 상상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 해가 서쪽에서 뜬다.
- 내가 63빌딩 꼭대기에서 맴몸으로 떨어졌는데 죽지 않는다.
- 모래알에서 싹이 튼다.
- 인천 앞바다가 사이다로 변한다.
- 돼지가 하늘을 난다.
인간이야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없지만 장난기가 많은 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법칙적으로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상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논리적 가능성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세상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있는가? 상상하는 데 돈 드는 것도 아니니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리 상상하려고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다음과 같은 보기가 그렇다.
- 송이는 처녀인데 남자다.
- 저기 보이는 섬들은 5개이면서 6개다.
- 아브라임이 이삭의 아버지이고 이삭은 야곱의 아버지인데 아브라임이 야곱의 아버지이다.
- 나는 꿈에서 동그란 세모를 봤다.
위 보기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전지전능한 신조차도 상상할 수 없다. 일본의 유명 만화인 드레곤 볼(1984-1995)은 용의 구슬(드레곤 볼)을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구슬을 일곱 개 모아 주문을 외면 용의 모습을 한 신(신룡)이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준다. 그런데 신룡도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소원은 들어줄 수 없다. 신룡은 "자 소원을 말하라. 어던 소원이든 단 한가지만 들어줄게."라고 말하지만 처녀인 남자를 만들어달라는 소원은 들어줄 수 없을 것이다. 신룡이 아니라 어떤 신이든 마찬가지다...동그란 세모는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신이 아니라 신 할아버지라도 상상할 수 없다...실제로 가능한 것⊂법칙적으로 가능한 것⊂논리적으로 가능한 것⊂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 법칙적으로 가능한 것은 모두 논리적으로 가능하지만, 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모두 법칙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철학자들이 사고실험을 위해 가상의 상황을 상상할 때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든 상상한다...법칙적으로 불가능해도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사고실험의 핵심인데, 법칙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이런 식으로 배제한다면 사고실험은 쓸모가 없는 것 아닐까?(p. 27-30)
칸트는 "의무는 능력을 함축한다."라는 말을 했다. 무엇인가를 의무로 부과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 인간은 날 수 없는데 '날아라'는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 먼저 결과에 대해 말하자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데 결과를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다. 내가 짐을 들어주었더니 그 노인이 신이 나서 뛰나가 넘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편 경향성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성품을 말한다. 그런데 경향성은 사람마다 날 때부터 다르게 가지고 있다. 동정심이 많게 타고난 사람도 있고 냉정하게 타고난 사람도 있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그런 타고난 성품으로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그래서 칸트는 결과나 경향성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동기에서 그렇게 행동해야만 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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