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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픽션

쇼펜하우어 문장론/아르투르 쇼펜하우어/김욱 옮김/지훈

by 럽판타지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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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은 인간의 정신에서 탄력을 빼앗는 일종의 자해다. 압력이 너무 높아도 용수철은 탄력을 잃는다. 자신만의 고유한 사상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손에 넣는 방법은 독서다. 천성이 게으르고 어리석은 일반인이라도 꾸준한 독서를 통해 일정한 학문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렇게 얻어진 길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독서는 어디까지나 타인이 행한 사색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포프의 조소처럼 "영원히 읽히지 않기 위해 영원히 읽는"것이다. (p.14)

나만의 고유한 사색에 의해 어떤 진리에 도달했다면, 비록 그 내용이 앞서 다른 책에 기재되었을지라도 타인의 사상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이라는 점이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비록 동일한 모습과 형태를 갖춘 진리일지라도 생성된 모태는 엄연히 다르다. 다시 말해 산의 정상일지라도 오르는 사람의 개성과 방법에 의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사색을 통해 기대하는 결과는 단순히 산 정상에 도달했다는 물리적 결과만이 아니라 정상에 도달하는 동안 겪었던 체험도 포함되어 있다. 둘째, 이 같은 개별적인 체험에 의해 동일하게 얻어진 진리도 그 적용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셋째, 고유한 사색을 통해 얻어진 진리이기 때문에 독서를 통해 우연히 획득한 진리와 달리 어떤 환경 변화가 발생해도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리를 획득하는 이 같은 과정은 괴테가 남긴 다음과 같은 격언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대의 조상이 남긴 유물을

그대 스스로의 힘으로 획득하라."

즉 스스로 사색하는 자는 자신의 의견을 먼저 정립한 후 비로소 이를 보증하고자 권위 있는 학설을 습득하여 그 의견을 보통한다. 반면에 '서적 철학자'는 타인의 권위에서 출발한 이들의 학설을 긁어모아 하나의 체계를 정리한다. 그러므로 타인으로부터 얻은 재료로 만들어진 철학이 인형이라면, 자신의 사색으로 만든 철학은 살아 있는 인간인 것이다.(p.17-18)

많은 학자들이 경험과 대화와 약간의 독서로 축적된 지식을 통해 사람들을 자기 생각대로 지배하고, 통일시키려고 한다. 독서에 의해 체계적인 학식을 습득해야 하는 철학자들도 이들과 같은 길을 걷는다. 사상가 또한 다량의 지식을 필요로 하며, 그 때문에 엄청난 양의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학자와 달리 모든 내용을 소화하여 자신의 사상 체계에 병합시킬 수 있다.(p. 20-21)

흐트러진 생각으로 괴로울 때는 차라리 책을 한 권 집는 편이 낫다. 다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독서는 사색의 대용품으로 정신에 재료를 공급할 수는 있어도 우리를 대신해서 저자가 사색해줄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다독을 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대용품, 즉 독서가 실제적인 사색을 방해할 수도 있다. (p.26)

익명으로 글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익명을 통해 공격한다는 것은 분명 사회정의를 실추시키는 파렴치한 범죄행위이다. 익명 비평가는 타인이나 타인의 저작에 대해 비판을 남용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가해자라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익명 비평은 그 시작부터 상대방과 자신을 기만하겠다는 목표가 설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복면을 뒤집어쓰고 거리를 활보다는 자를 사회가 자유라는 이륨으로 용납하지 않듯이 익명으로 타인을 비판하는 것도 용서해서는 안 된다.(p.86)

익명 평론가들의 후안무치한 행동 중에서도 가장 비열한 행위는 국왕처럼 1인칭 복수 '우리는'이라고 발언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1인칭도 단수도 과분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걸맞게 '교활하기 짝이 없는 본인은', '비열한 유랑인으로 전전하던 나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p.89)

거만한 말투로 글을 쓰는 자는 자신의 비천한 신분을 숨기고자 어울리지도 않는 값비싼 의상으로 몸을 감싸는 졸부와 같다. 진정한 신사는 아무리 허술한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해도 누구 한 사람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다. 즉 호화로운 장식품과 값비싼 의상이 졸부와 더러운 속성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듯이 자신의 지적인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함부로 언어를 도용하는 것은 지적 천박성을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p.116)

독일의 작가들은 왜 그토록 복잡한 삽입체를 편애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상을 심오한 지성으로 보이게 하고 싶어서이다. 즉 독자들의 존경을 받고 싶어서이다. 또는 무의식적으로 작가의 그릇된 욕망이 숩어있다. 그들은 이런 기교를 통해 자신의 정서적 빈약함을 은혜한 후 독자에게 정반대되는 인상을 심고자 노력하는 것이다.(p.174)

비유 또는 직유(Gleichnis)는 미지의 상태를 기지(機智-경우에 따라 재치 있게 대응하는 지혜)의 상태로 환원시킬 때 큰 가치를 갖는 표현법이다. 직유가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하면 우유(寓喩우의적 비유, 어떤 사물이나 관계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어 암시적∙풍자적으로 표현하는 기법, Parabel)나 우의(禹意 Allegorie,

어떤 추상적 관념을 드러내기 위하여 구체적인 사물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방법),가 되는데,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를 가장 평이하게, 그리고 간결하게 직관한 후 표현하려는 시도이다. 어떤 사물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가르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비유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사물의 공통적인 부분을 선택한 후 공통적이지 않은 부분을 삭제함으로써 개념이 점차 확장되는 것이 바로 비유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종류의 이해를 막론하고 '이해'란 결국 어떤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어떤 상태가 이질적인 여러 가지 형식이라든가 사물 등에 동일한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그만큼 명백하게, 더욱 순수하게 상태의 진실을 파악하게 된다. 즉 어떤 상태로부터 이해되는 하나의 형식은 보편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작가나 독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없는 직관적인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가지 이질적인 형식을 통해 동일한 상태를 파악하는 활동은 어떤 상태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되고, 따라서 더욱 주관적인 지식과 완전한 지혜로 발전하게 된다. 비유는 이처럼 지식을 얻는 데 필요한 강력한 무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비유야말로 작가의 능력을 발휘하는 가장 완벽한 기회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교모한 비유를 생각해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지성이다. 인간은 타인에게 비유를 배울 수 없으며, 비유는 오직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활동할 뿐이다. 왜냐하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비유를 창조해내는 능력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그가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비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상반되는 성질의 사물에게 공통점을 발격ㄴ하는 것이 철학의 목적이라면, 그 같은 공통점을 발견하는 눈은 바로 비유이다."(p.177-179)

쇼펜하우어의 문장 노트

  • 쓰기 위해 쓰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 글쓰기의 3가지 유형 : 생각하지 않고 글쓰는 유형, 쓰기 위해 생각하는 유형, 쓰기 전에 모든 사색을 끝내는 유형
  • 남의 글을 표절하는 행위는 일종의 강탈이며 범죄행위이다.
  • 제목은 간결하고 함축적인 것이 좋다.
  • 참신한 소재와 형식은 글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 대화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화제가 아니라 대화를 이끌어가는 형식적인 능력이다.
  • 풍자는 대수처럼 일정치 않은 가치에 대한 조작이다.
  • 인간의 존엄인 생명까지 풍자의 손길이 미쳐서는 안 된다.
  • 위대한 작가는 오직 자신의 길만을 걷는다.
  • 익명과 가명의 글쓰기는 진실을 은폐하는 것과 같다.
  • 잘못된 인용과 멋대로 고치는 문장은 위조화폐와도 같다.
  • 문체는 정신의 표정이고 인격의 개성이다.
  • 작가의 고유한 문체는 소박한 정신과 순수한 신념으로 구축되는 건축물과 같다.
  • 허황한 글쓰기는 조잡한 연극과 같다.
  • 장황한 단어들의 나열은 독자의 눈을 어지럽게 한다.
  • 엉터리 글쓰기에도 문법, 논리, 수사라는 3가지 기본 형태를 필요로 한다.
  •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글쓰기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 소박한 기풍과 정직한 글쓰기야말로 글쓴이에 대한 가장 훌륭한 찬사이다.
  • 읽기 쉽고 정확한 문체를 위해서는 주장하고 싶은 사상을 소유해야 한다.
  • 자연스럽지 못하고 모호한 표현,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는 문장, 군더더기가 많은 글쓰기처럼 나쁜 것은 없다.
  • 간결한 문체와 정확한 표현은 글쓰기의 첫걸음이다.
  • 무분별한 외래어의 남용은 글쓴니의 정신적 빈곤을 감추기 위함이다.
  • 문체는 머릿속이 사상을 명료화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 쓸데없는 사족은 문체와 문장의 명료함을 흐리게 한다.
  •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쓰려고 애쓰지 말라. 문체의 핵심과 중요한 부분을 언급하라.
  • 그릇된 언어 선택은 지성을 마비시키고 고유한 개념을 잃게 한다.
  • 간경하고 우아한 문체는 풍요로운 사상에서 나타난다.
  • 적절한 비유는 작가의 능력을 발휘하는 가장 완벽한 기회이다.
  • 어떤 사물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비유가 필수적이다.
  • 적절한 비유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지성이다(아리스토텔레스).
  • 상반되는 성질의 사물에서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철학의 목적이라며, 그같은 공통점을 발견하는 눈은 바로 비유이다.
  • 언어는 일종의 예술이므로 객관적인 규칙으로 다루어야 한다.
  • 지성은 '예리함'이며, 예리한 감각은 예술과 문학에서 살아 있는 감정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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