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재 씨, 지금 이 자리, 혹시 저한테 작업거시는 건가요?'
이제야 조금 말이 통하는 모양이었다. 태블릿을 내려다본 선재가 오만하게 그녀를 향해 미소지었다. 그는 당황함을 애써 감추려 노력하는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당당하게 되물었다.
"왜? 그럼 안 되나?"
'네, 싫은데요.'
타자는 빨랐다. 선재가 피식 웃었다. 적당히 고무줄처럼 튕기는 여자도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게 연기라고 할지라도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는 나쁘지 않다. 그런 여자가 침대에서 울면서 매달리면 정복감은 더욱 커지는 법이니까.
"이유는?"
그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요.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여자가 잠시 손을 멈추더니 허공으로 또랑또랑한 눈알을 굴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민선재 씨는 제 타입이 아니라서요.'
하, 선재가 웃으며 엄지로 자신의 입술을 쓸었다.
“난 이연정 씨가 두 시간 뒤에 그 말을 취소한다는 데 내 돈을 걸 수도 있어.”
여자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 보였다. 선재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말해 주었다.
“내가 보통 침대에서 여자랑 머무르는 시간이 두 시간이거든. 두 시간 후면, 이연정 씨는 지금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하게 될 거고.”
그녀가 움찔, 하며 놀라자 그는 그제야 속이 조금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잘난 어미 덕분에 꽤 그럴싸한 껍데기로 살아온 지 삼십이 년째였다. 여태껏 그의 외모, 돈, 배경에 환장하는 여자들을 침대에 데려가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여자는 교묘하게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래 봤자 장애인 주제에.
‘대단한 자신감이시네요.’
“내가 확률과 통계를 괜히 배운 게 아니거든. 내 경험상 그래.”
여자가 말간 눈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얀 손이 다시 키보드 위에서 움직였다. 느리게 움직이는 손가락이 묘하게 다시 그의 성적 본능을 자극했다.
오늘은 손가락에 붙은 밴드가 두 개다. 저 손을 입에 넣고 잘근 씹으면 무슨 기분이 들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민선재 씨. 실례지만 지금, 저랑 자고 싶어서 이러시는 건가요?’
잠시 망설이다 키보드를 두드린 여자의 돌직구에 선재는 슬쩍 미소 지었다. 이렇게 빤히 바라보면서 입술을 당겨 웃으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이 붉어지며 그의 시선을 피하곤 했다.
“정답. 나는 원래 같이 안 잘 여자랑은 술 안 마셔.”
‘그럼 차라리 처음부터 그렇게 정확하게 말씀하셨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요.’
어쭈, 이것 봐라. 여자는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침착하고 담담한 표정이었다.
--------------------------
이랬던 선재가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여주 장애인 소재 특이하고. 김빠님 다작하시고 모두 평타이상 베스트 셀러. 그 중에서 최고가 아닐까? 후회남 환골탈태남 취향이시면 엄청 재미있을듯요. 알콩달콩 앤딩 넘 좋아요. 여담이지만, 1권 딴 사이트에서 읽고 00오페이지 책장 넘기다가 몇년전에 읽었던 책임을 알게 됨. 물론 소설들이 비슷 비슷한 소재들 많아서 그럴 수 있겠지만, 이런 설정은 절때 잊을 수가 없는데? 이런 강열한 내용을 백지로, 까마득히 잊을 수 있지? 그 이후로 구입 전 책장 검색 반드시 합니다. 기억력을 신뢰하지마라.
'픽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겨울의 순정 / 채은 저 - 쌍방 완전 힐링 (0) | 2022.11.11 |
---|---|
스펙트럼(Spectrum)/안단테 저 (0) | 2022.11.11 |
무영도(茂影島) | 타이백 저 - 소주병 좀 어떻게 해봐ㅋㅋ (0) | 2022.11.10 |
옷소매 붉은 끝동 | 강미강 저 - 가혹하다 소설인데. (0) | 2022.11.09 |
야성의 숲 1권 | 이내리 저 - 준다며, 벌! 려! (0) | 2022.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