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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율도 (律道) /소낙연(笑樂緣) - 나의 일각을 너에게 주마, 기꺼이.

by 럽판타지 202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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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이불을 밀어 내며 심각하게 말해 왔다. 티 없는 눈동자에 한가득 담긴 순수한 신의, 혹은 애정. 그 순간의 율도는 그가 보았던 어느 여인보다도 더욱 여인처럼 보였다. 시리도록 고와서 사내라는 것도 잊었다. 무엇보다 그 입술이 탐났다. 고혹적으로 살짝 벌어진, 달콤한 향내가 날 것만 같은 앙증맞고 야무진 입술. 심장이 크게 고동치고 있었다.
“내가…… 받고 싶은 것이 있다면 주겠느냐?”
저도 모르게 욕망을 입 밖에 냈다. 탐이 난다. 그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검은 속내를 감추느라 얼굴은 굳었고,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율도가 화사하게 웃었다.
“당연하지 않으냐. 내가 줄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줄 것이다. 그런데 도통 가진 것이 없으니.”
혈은 아쉽게 한숨을 내쉬는 녀석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무엇이든 주겠다. 그 말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맴돌자, 그는 점점 더 뻔뻔해졌다. 애써 다잡았던 이성이 툭 끊어졌다.
“……허면 너의 일각을 나에게 주는 것은 어떠하냐.”
“일각?”
“그래. 내가 받고픈 것을 받아 가는 일각 동안, 내치지 않고 견뎌 주겠다고 약조하여라.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얼굴을 다시 안 보겠다는 말만은 하지 않겠다고도.”
“응? 뭔데 그리 거창한 것이냐?”
율도가 고개를 갸웃하며 푸스스 웃었다. 혈은 웃지 않았다. 대신들에게 뜻을 관철시킬 때에나 쓸 법한 작고 얕은 함정. 그것을 그는 세상 가장 귀한 벗에게 쓰고 있었다. 잠시 자괴감이 일었지만, 얄팍한 그 감정은 파도처럼 밀려드는 욕망에 밀려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렵다면 지금 안 된다고 말을 하거라.”
“안 될 것이 무에 있겠느냐? 약조하겠다. 그리해서 네가 위로를 받는다면 그보다 더 근사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
녀석은 시원하게 약조해 왔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 녀석은 약조란 이유로 무조건 지킬 것이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찌할 생각이지? 틀림없이 종국에는 화를 낼 터인데. 머릿속에 수많은 갈등이 오갔다. 하지만 그 어떤 우려도 무섭도록 밀려드는 욕망을 가라앉힐 정도는 되지 못했다.
혈은 천천히 손을 들어 녀석의 뺨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율도는 장난이라도 거는 거라 생각하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그를 응시하자 잠시 망설임이 일었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그만둘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눈도 감는 것이 좋겠다.”
“응.”
대답과 함께 커다란 눈이 감기며 속눈썹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혈은 보드라운 뺨을 가만히 매만졌다. 이전에도 수없이 녀석을 안고 만졌지만, 절대 이런 이유는 아니었다. 언제부터 이런 마음이 되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뺨을 배회하던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쓸었다. 율도는 눈을 감은 채로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간지러운 듯 웃었다.
수많은 갈등 끝에, 혈은 녀석의 이마로 천천히 입술을 내렸다. 인장을 찍듯 오래도록 입술을 누르고, 뺨을 따라 조금씩 아래로 얼굴을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보드랍고 말캉한 녀석의 입술을 머금은 순간, 율도가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야! 아무…….”
그를 부르던 입술이 깊게 파고드는 그의 입술에 가로막혔다. 눈이 마주쳤지만 혈은 그만두지 않았다. 녀석에게서 번져 드는 달콤한 기운이 미약처럼 온몸에 퍼져 나가 멈출 수도 없었다.

 

리디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2093019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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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일각을 나에게 주는 것은 어떠하냐.” 그거슨 명대사다. 오로지 혈만이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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