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저녁은 먹었어?”
저녁 먹을 시간은 한참 지난 뒤였지만, 희수는 돌아보는 그에게 재차 물었다.
“치킨 먹을래?”
“……예?”
“한 마리 시키면 혼자 먹기에는 많아서…….”
그녀는 놀란 그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변명하듯 덧붙였다.
“선배님 집에서, 말입니까?”
“어, 너희 집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수저도 없고……. 아, 맥주 좀 사 올래? 내가 치킨 시켜놓을 테니까.”
그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희수의 귀에까지 들렸다.
“금방 다녀올게요.”
“천천히 다녀와. 옷도 편하게 갈아입고. 치킨 오려면 시간 좀 걸리니까.”
희수는 머쓱한 뺨을 쓸어내렸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두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심장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뛰었다.
꼭 처음 그를 집에 들이던 날처럼 기분이 이상했다.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그런 기분…….
휴대전화로 치킨을 주문하고, 가방을 내려놓고 괜히 휑한 집을 정리하고, 씻고 옷을 주워 입고 나오는데 딩동, 벨 소리가 들렸다.
밤이 늦어서인지 배달이 빨랐다. 조금만 더 꿈지럭댔으면 허둥지둥할 뻔했다고 생각하며 지갑을 들고 문을 열었다.
“아, 감사합니다.”
인사하며 고개를 드는데 낯이 익은 배달원이었다. 배달원 얼굴을 기억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일전에 이헌이 처음 집에 왔던 날, 그녀를 불편하게 했던 그 배달원이었다.
뱁새 같은 눈이 희수를 내려다봤다.
괜히 어깨가 얼어붙어 손을 더듬거리며 돈을 꺼내 건넸다. 빤히 희수의 목덜미를 보던 그는 돈을 받으며 흘끔, 집 안을 둘러봤다. 그러고는 곧바로 잔돈을 내주지 않고 뜸을 들이더니 물었다.
“혼자 사시나 봐요?”
“아, 아니에요.”
“에이, 뭘.”
“빨리 잔돈 주세요.”
친근한 투로 말을 거는 것을 끊고 손을 내밀자, 그가 금세 시비를 걸었다.
“아, 누가 떼먹어요? 거 되게 재촉하네. 몇 살이에요?”
“이 여자 몇 살이면 뭐하게?”
끼어드는 목소리에 배달원의 몸이 떠밀렸다. 치헌이 불쾌하다는 얼굴로 배달원을 내려다봤다. 배달원보다 족히 한 뼘은 큰 그가 문 안으로 들어서서 희수의 앞에 섰다. 희수는 더럭, 그의 등, 옷자락을 붙잡았다.
“뭡니까.”
“아…… 아니, 혼자 사시는 줄 알고…….”
배달원이 더듬거리며 뱉은 말에 치헌의 미간이 살벌하게 찌푸려졌다.
“혼자 살면 뭐?”
배달원은 그제야 치헌과 희수를 알아본 듯, “아이 씨발” 하고 뒤로 물러나더니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다가 바쁘게 도망쳤다.
치헌은 놈이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확인하고 돌아와서는 문을 단단히 잠그며 말했다.
“저 새끼 상습인 것 같은데, 업체 번호 알려줘요. 내일 날 밝는 대로 처리해둘게요.”
“아, 어.”
희수는 휴대전화를 찾아 들어 그에게 번호를 넘겨줬다. 번호를 옮기는 그의 모습이 든든해 보였다.
“아, 잔돈!”
“받아올까요?”
“아냐……. 2천 원인데, 괜히. 적선한 셈 치면 되니까…….”
그 양아치가 2천 원을 더 번 데에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치헌이 작게 웃으며 손을 들어 습관처럼 희수의 젖은 머리카락을 넘겨줬다. 따뜻한 손가락이 닿아 멈칫하자, 머리카락 끝만 만진 그가 금세 손을 떼고 시선을 돌렸다.
꿀꺽.
그의 손가락이 닿은 이마 위가 간지러운 것 같아 손으로 문질렀다.
불행의 기원 3권 (완결) | 씨씨 저
https://ridibooks.com/books/359200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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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은이벤트로 읽었는데, 씨씨님 책은 다 재미있어. 후회남주 꼭 등장함. 제목은 우울하지만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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