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도진은 어이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느닷없이 방으로 찾아온 것도 기가 막힌데, 뭐? 같이 자자고?
이 여자가 정말…….
내 속에선 천불이 나는데 이수는 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잤어요.”
그의 눈빛이 살짝 일그러졌다.
“근데?”
속과는 달리 말이 비뚜름하게 나오는 건, 지금 자신의 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단둘이 침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지노선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가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생각해보니까, 당신이 가까이에 있을 땐 내가 잠을 잘 잤더라고요. 섬에서도 그렇고…….”
도진의 얼굴이 굳었다. 제멋대로 뻗어나가려는 손을 묶으려고 팔짱을 꼈다. 창틀에 기대서 함부로 튀어나가려는 발을 바닥에 딱 붙였다.
“그래서? 나더러 재워달라고?”
“그런 게 아니라…….”
얼른, 부정하려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것 같아요. 맞아요.”
그녀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나 좀, 재워줘요.”
하.
도진의 입매가 매섭게 굳었다. 눈빛은 푸른 불꽃이 튀었다.
“경호원을 시키더니 이젠 보모노릇도 하라는 건가?”
일부러 못되게 비아냥댔다. 잠을 못 자서 퀭한 그녀의 얼굴이 안쓰럽고 걱정이 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에게 재워달라는 말을 하는 여자한테 화가 나기도 했다.
아예…… 마음이 없는 건가?
나는, 같은 공간에 단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미칠 것 같은데…… 너는…….
“난 그냥 바닥에 자도 돼요.”
마음이 없다. 없는 거다.
“내가 덮칠 수도 있는데. 그건 걱정이 안 되나?”
그녀는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때, 여기에 단 한 톨의 미련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그녀가 다시 미소를 짓는다.
“약속했잖아요.”
그의 눈빛이 일그러졌다.
“날 지켜주겠다고.”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지켜주겠다고 한 의미는.
도진은 자신의 옆에 잠들어있는 여자를 보았다.
‘침대에서 자.’
‘당신은요?’
‘우리 둘이 같이 누워도 될 만큼 충분히 커. 왜? 겁나?’
그렇게 도발해서 여자와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오기였다.
네가 아무렇지 않다면,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쓸데없는 자존심.
지금은…… 후회한다.
도진은 몸을 뒤척여 그녀를 향해 돌아누웠다. 팔꿈치를 세워 머리를 받치고 그녀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약속했잖아요. 날 지켜주겠다고.
그런 약속, 한 적 없다. 다른 위험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주겠다고 했지, 나 자신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줄 생각 따윈 없었다.
하얀 얼굴을 지나 가느다란 목선, 굴곡진 여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몸이 뜨거워진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조직에 완전히 들어선 후로 남 생각 따윈 해본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충동이 이끄는 대로, 안고 싶은 여자가 있으면 안으면 되고, 화가 나면 주먹을 쓰면 됐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조차 없었으니까.
그렇게 어둠의 세계에 완벽히 적응해나갔고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이젠 그 전의 삶은 기억조차 없다. 그런데…….
이 여자에 관한한, 모든 걸 참게 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나 자신보다 이 여자가 걱정되고, 여자의 마음을 저울질하게 되고, 여자가 원하는 바를 먼저 생각하게 된 게.
천하의 황도진이, 거친 밤 세계에서 종횡무진, 무법자로 어둠을 지배하던 내가…… 이 작은 여자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지켜줘 2권 (완결) | 오수진 저
리디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0051063
1권까지 답답한 여주. 소재는 참신, 스토리 긴장감 있음, 완독가능
[참고]
스톡홀름 증후군(영어: Stockholm syndrome 스톡홀름 신드롬[*], 스웨덴어: Stockholmssyndromet 스톡홀름쉰드로메트[*])은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변호하는 현상이며, 인질이 아니더라도 일부 매맞는 배우자나 가족의 일원, 학대받는 아이들도 이와 유사한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고 한다. 반대로 리마 증후군은 범인이 인질에게 동화되는 심리 현상이다.-위키백과
순망치한(脣亡齒寒).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망한다는 뜻
'픽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행의 기원 | 씨씨 저 - 한마리 다먹는 여자는 어쩌라고ㅠㅠ (0) | 2022.11.27 |
---|---|
까마귀는 반짝이는 것을 좋아해 | 씨씨 저 - 까마귀에 죽고 못사는 빤짝이 (1) | 2022.11.26 |
꽃은 꽃으로, 잎은 잎으로/우지혜 - 네 꿈을 보았으니 이번엔 내 꿈을 보여 주지 (0) | 2022.11.24 |
미친 | 시크 저 - 거친 달달함 (0) | 2022.11.23 |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온도차 | 리베냐 저 (0) | 2022.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