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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참아주세요, 대공 | 진소예 저 - 이건 반어법. 참지마! 제발.

by 럽판타지 2022.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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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잠에 빠져 눈을 깜빡일 때마다 창밖의 세상이 하얘지고, 어느덧 더운 김에 성에가 잔뜩 끼었다. 또다시 100을 세겠다며 눈을 감았다가 뜬 그녀는 창에 비친 그림자를 발견했다.

  욕실 벽난로 옆에 기대 있는 누군가에게로 시선을 옮긴 리아의 동공이 커다래진다.

  멍하니 올려다본 남자는 클로드 같았다. 아니, 분명 클로드였다.

  “…꿈인가?”

  헛웃음을 흘리며 물을 떠 세수를 하자, 이번엔 옷을 벗는 그가 보였다.

  주저 없이 셔츠를 거꾸로 벗어 툭 던진 그가 벨트를 풀고 바지를 내린다. 리아는 눈을 감는 것도 잊은 채 남자를 보았다.

  그는 마치 책에서 본 전쟁의 신과 닮아 있었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전체적인 모습이 달랐다. 터질 듯 단단해진 상체를 가득 채운 상흔이 지난 3년간의 일들을 대변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꿈이다. 내일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 그가 이곳에 있을 리 없잖은가?

  실소하며 고개를 숙인 그녀의 귓가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든다.

  “꿈일지도.”

  알몸이 된 그가 욕조 가장자리를 잡더니, 탕 안으로 들어와 그녀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그의 무게만큼 넘쳐 버린 물이 바닥의 타일 위로 경쾌한 소릴 내며 쏟아진다. 리아는 마주 앉은 남자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반쯤 넋이 나간 채였으나 똑똑히 보였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조금 더 자란 머리카락은 이미 샤워를 마친 듯 젖어 있었고, 그의 어깨엔 전에 없던 깊은 상흔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현실감이 없다.

  그때 욕조 가장자리에 팔을 걸친 그가 비스듬히 웃으며 말했다.

  “꿈이라면, 어떻게 할 거지?”

  먹먹하게 들리는 음성에 리아는 부끄러움도 잊은 채 손을 뻗었다. 시간을 역행하듯 느린 움직임이었다.

  숨을 참는 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손에 그의 뺨이 닿는다. 리아는 깎아지른 듯 날카로운 턱
턱선과 콧날, 살짝 거칠어진 입술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이 취기 때문인지, 그리움이란 독에 잠식되어서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녀가 가까워질수록 욕조를 움켜쥔 클로드의 손등에 시퍼런 핏대가 곤두섰다.

  무릎을 세운 리아가 미끄러지듯 다가선 순간, 가느다란 허리춤에 커다란 팔이 감겼다. 놀라 헛바람을 들이켠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서 들려온 음성.

  “겁도 없고, 부끄러움은 더더욱 없고. 사내를 뭐로 보고 이토록 겁 없이 구시는 건지.”

  어둡게 빛나는 눈동자와 탁하게 가라앉은 음성에 뒤늦게 가슴이 드러났다는 걸 상기한 리아가 다급히 물속으로 몸을 낮추려 했다. 하지만 허리를 감싼 그는 강한 힘으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나야 환영이지만, 고문이라고.”

  밀어내야 한다고 머리가 외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흔들리는 눈동자에 벽지의 문양이 거울처럼 비친다.

  결국, 카닐리아는 그의 목덜미를 지그시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습니다. 공.”

  꿈이라면 깨어나지 않기를.

  서서히 일그러지는 얼굴과 눈동자에 차오른 눈물.

  그녀의 뒷머릴 부드럽게 움켜쥔 그가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속삭인다.

  “나만 할까.”

참아주세요, 대공 67화 | 진소예 저

https://ridibooks.com/books/236900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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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풍의 대가.진소예님. 갓작입니다. 모든 남장여자 소설이 그렇듯 밝혀지면 긴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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