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십니까?”
“대체 넌 이런걸 어디서 배운 거지?”
“저, 아시다시피 부용에서 컸잖습니까. 언니들에게 배웠습니다. 술 마신 다음 날, 나으리들께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해장보다 지압이라고요.”
“흠…. 이제 매일 네게 내 목욕 수발을 맡겨야겠구나.”
“원하신다면 매일 해드리겠습니다.”
은하는 그의 머리를 꾹꾹 누르며, 미려한 이목구비를 지나 불룩 튀어나온 목울대를 훑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곤 시선을 돌렸다.
“외출은 어땠느냐. 즐거웠느냐?”
“예, 즐거웠습니다. 세책방 아저씨께서 새로운 책도 주셨고요. 나으리가 아주 좋아하실 거라 하셔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은 그 책을 읽어 보도록 해라.”
“예.”
“한데 목소리가 그리 기뻐 보이진 않는구나. 내가 틀렸나?”
은하는 흠칫 놀라 헛기침을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 아셨습니까?”
“목소리만 들어도 알지. 이젠 제법 그럴 만큼, 우린 많이 대화를 나누었다 생각하는데.”
“실은, 언니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꼭 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쪽지를 받아서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하여, 울었느냐?”
“예?”
“울어서 눈이 빨개졌느냐?”
그녀는 지난번 기억해 둔 면경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학의 말대로 눈이 빨간 것이 누가 보아도 펑펑 운 티가 났다. 부끄러워진 그녀는 ‘울지 않았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네 표정이 궁금하군.”
그러자 피식 웃은 그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다. 은하는 지압을 마친 후 그의 머리카락에 미지근한 물을 부었다.
“박색인 얼굴이 무에 궁금하십니까. 보셔도 실망만 하실 겁니다.”
“그러냐. 넌 박색이로구나.”
마치 혼잣말처럼 뇌까린 그가 바가지를 든 은하의 손목을 잡아챘다. 떨어진 바가지가 물 위에 둥둥 떠 멀리멀리 밀려간다. 그래 봤자 욕통의 끝에서 끝이지만, 그녀의 손이 닿지 않는 거리였다.
“저, 저기 나으리. 바가지가 떠내려갑니다.”
“그깟 바가지.”
“그래도 저기….”
“얼굴이 박색이라더니, 손도 거칠구나.”
은하는 이 거친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겼다고 생각하자, 창피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직후 마치 눈이 보이는 사람처럼 웃은 그가 그녀의 손을 끌어 뒤에서 자신을 안은 것 같은 자세를 취하게 했다.
“이 물에 손을 담그면, 온몸이 매끄러워지지.”
그의 등 뒤에 달라붙듯 밀착된 은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지학이 제 손을 물에 담그는 걸 지켜보았다.
뜨거운 물에 닿은 손끝이 따끔거린다. 잠시나마 괜찮았던 통증이 다시 시작되어,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아….”
그러자 고개를 비스듬히 튼 그가 그녀의 입술 즈음에 입가를 누르며 물었다.
“왜. 뜨거운 것이냐?”
“그것이 아니라… 손이 얼었다가 녹아서 따끔거립니다.”
“그래? 다른 곳은.”
“예?”
“다른 곳이 얼지는 않았고? 보지 않아도 얇은 신을 신고 눈밭을 뛰어다녔을 것이 뻔한데….
발은 얼지 않았느냐?”
혹시 발까지 담그라 하실까 봐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콧날과 입술이 뺨에 뭉개진다. 몸을 떼어 내려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나 힘이 강한지. 그녀는 옴쭉도 하지 못했다.
“나으리, 이제 놓아 주세요.”
폭야(暴夜)(삽화본) 1권 | 진소예 저
https://ridibooks.com/books/2369005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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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갓작의 향기가 났으나, 뭔가 설레지가 않다. 2권은 안읽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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