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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픽션

대표성의 원리(생각에 관한 생각)

by 럽판타지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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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W의 전공

 

간단한 문제 하나를 보자. 

톰W를 우리 지역 주요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원생이라고 해보자. 아래 아홉 개 분야를 보고 톰 W의 전공일 것 같은 정도에 따라 순위를 매겨보라. 가장 그럴듯한 전공은 1, 가장 그럴듯하지 않은 전공은 9로 한다.

 

경영학 / 컴퓨터 공학 / 공학 / 인문 교육 / 법학 / 의학 / 도서관학 / 물리생명과학 / 사회과학과 사회사업

 

구슬이 빨간색일 확률이 높은지, 녹색일 확률이 높은지 결정하려면, 단지에 담긴 빨간 수글과 녹색 구스르이 개수를 알아야 한다. 이때 특정 구슬이 차지하는 비율을 '기저율base rate'이라 한다. 이 문제에서는 이를테면 인문교육의 기저율은 모든 대학원생 가운데 그 분야 전공 대학원생의 비율이다. 

 

이제 기저율과 상관없는 문제를 보자.

아래는 톰 W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느 심리학자가 검증되지 않은 심리 테스트를 기초로 톰의 성격을 간략히 기록한 것이다. 

 

톰 W는 진정한 창의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다. 그는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명확하며, 세세한 것들도 깔끔하고 정돈된 체제를 갖추어 모두 제자리에 있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가 쓴 글은 다소 지루하고 기계적인데, 가끔 약간 진부한 언어유희나 공상과학소설 같은 상상으로 글이 활기를 띄기도 한다. 그는 경쟁심이 강하다. 그리고 타인을 향한 감정이나 연민은 거의 없어 보이며, 타인과의 소통을 즐기지 않는다. 자기중심적이지만 도덕의식은 강하다. 

 

문제는 너무 빤하다. 여러 분야의 대학원생들을 연상케 하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회상하거나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보라는 문제다. 이 실험을 처음 실시한 1970년대 초의 순서 평균은 아래와 같았다. 독자의 답도 크게 다리지 않을 것이다. 

1. 컴퓨터 공학 2. 공학 3. 경영학 4. 물리생명과학 5. 도서관학 6. 법학 7. 의학 8. 인문교육 9. 사회과학과 사회사업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저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223-225쪽)

 

확률(가능성)의 문제는 어렵지만 유사성 문제는 그보다 쉬우니, 문제를 바꿔 대답한 것이다. 유사성 판단과 확률 판단에 적용하는 논리는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면, 심각한 실수다. 유사성을 판단할 때 기저율이나 묘사의 부정확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확률을 판단할 때 기저율과 증거의 질을 무시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통계학자와 논리학자는 이제까지 확률을 서로 다르게 정의했고, 둘 다 대단히 정확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확률('가능성')은 불확실성, 일정한 성향, 그럴듯함, 놀람과 관련있는 모호한 개념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저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228쪽)

 

"시를 사랑하는 수줍은" 어떤 여학생이 중국문학 전공자인지 경영학 전공자인지 추측해야 한다면,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중국문학을 전공하는 모든 여학생이 수줍고 시를 좋아한다고 해도, 경영학 전공자가 훨씬 많아서 그중에 부끄럼을 타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가 훨씬 쉬울 게 분명하다. 

통계를 배우지 않은 사람도 어떤 상황에서는 예측에 기저율을 제법 잘 사용한다. 톰 W가 나오는 문제 중에 그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는 첫 번째 문제에서, 톰 W가 특정 분야를 전공할 확률은 그 분야 전공자 수인 기저율과 같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톰의 성격이 나오는 순간 기저율에 대한 관심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저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231쪽)

 

몇 해 전에 하버드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는데, 결과가 놀라웠다. 시스템2를 적극 활성화하자 톰 W문제에서 예측 정확도가 크게 향상된 것이다. 오래된 문제에다 오늘날의 인지적 편안함을 접목한 실험이었는데, 참가자 절반에게는 문제를 푸는 동안 볼에 바람을 넣어 볼을 부풀리라고 했고, 절반에게는 눈살을 찌푸리라고 했다. 앞에서 보았듯이, 눈살을 찌푸리면 일반적으로 시스템 2는 더욱 긴장하고, 직관에 대한 확신과 의존도는 낮아진다. 볼을 부풀린(중립적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 학생들은 이 문제에서 흔히 나오는 결과와 같은 결과를 내놓았다. 즉 대표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기저율은 무시했다. 그러나 눈살을 찌푸린 학생들은 예상대로 기저율에 다소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대단히 유익한 결과다.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저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232쪽)

요즘 시스템 2가 잘 작동하지 않는데, 미간 보톡스 때문인가? 미간 보톡스는 아예 인상을 쓰지 못하게 근육을 마비시킨다. 근육을 굳혀서 눈살을 찌푸릴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인데 - 사전에 주름이 만들어 지지 않도록, 보톡스가 일반화된 이후에 여성들의 이성적 사고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은 아닌가?

 

톰 W 문제와 관련한 규칙은 베이즈 통계에서 찾을 수 있다. 근대적 통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이 방식은 18세기 영국 목사 토머스 베이즈Thomas Bayes에서 이름을 따왔다. 관련 증거가 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바꿔야 하는가, 하는 논리에 처음으로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베이즈 규칙은 원래의 믿음(기저율)에 증거(톰 W에 대한 묘사)의 검증력을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증거가 가설을 얼마나 뒷받침할수 있는가를 검증하는 검증력은 그 증거가 해당 가설(가령, 톰 W는 컴퓨터과학 전공자다)을 다른 가설(톰 W는 다른 분야 전공자다)보다 어느 정도나 선호하느냐로 나타낸다. 예를 들어, 대학원생 3퍼센트가 컴퓨터 과학 전공이라 생각되고(기저율), 톰 W의 성격 묘사는 다른 과보다 컴퓨터과학 전공자에 네 배 더 가깝다고 판단된다면, 베이즈 규칙에 따라 톰 W가 컴퓨터과학자일 확률은 11퍼센트라고 생각해야 한다. 만약 기저율이 80퍼센트였다면, 그 확률은 94.1퍼센트가 된다.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저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234쪽)

 

대표성과 관련한 말들

"잔디도 손질이 잘 됐고, 안내데스크에 있는 사람도 능력 있어 보이고, 가구도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운영이 잘 되고 있는 회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사회가 대표성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신생 업체는 망하지 않게 생겼지만,이 업계의 성공 기저율은 극히 낮다. 어떻게 이 기업만큼 다르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들은 빈약한 증거로 드문 사건을 예측하는 실수를 되풀이한다. 증거가 빈약하면 기저율에 충실해야 한다."

"이 보도를 보면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확실한 증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확신하겠는가? 우리 생각이 불확실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저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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