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이 팔의 힘을 완전히 푸는 순간, 세정은 그의 어깨를 밀친 후 세차게 그의 뺨을 날렸다.
짝!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술이 소리 없이 벌어졌다. 그의 옆에 있던 태환과 지훈의 친구들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지훈의 뺨을 때린 세정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 다시는… 다시는 돈 가지고 장난하지 마, 이거 경고야.”
지훈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싸늘해지자 그의 옆에서 물러선 친구들이 불안한 시선을 나누었다. 얼굴 한쪽이 붉어진 그가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세정의 눈동자에 물기가 번져 반짝반짝 빛이 났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지훈은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며 그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는 벌써 두 번이나 그녀에게 뺨을 맞았다.
맞은 것이 충격이라면 충격이었지만 때릴 때마다 세정의 표정이 너무 볼만해서 화가 나기보다 어이가 없었다. 맞은 쪽은 그였는데 울먹이는 것은 늘 그녀 쪽이었다.
“흑… 가까이 오지 말라고…!”
지훈이 피식 웃더니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세정은 가늘게 떨고 있긴 했지만 그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세정아.”
그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이름을 불렀다. 세정이 다시금 움찔했다. 그는 그녀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난 돈 가지고 장난한 적 없어.”
“…그게 장난이 아니면… 대체 뭔데.”
세정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 얼굴을 문질러 대며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는 숨이 막히게 다정했다.
“너 열받게 해서 나한테 달려오게 만드는 데 1억 든 거야. 날 투명 인간 취급하던 네가 내 이름 먼저 부르게 만드는 데 딱 1억 든 거라고.”
“…하아….”
그의 대답에 뭐라고 답을 할 수가 없어 세정은 숨만 크게 몰아쉬었다. 그런 그녀를 끌어안고 지훈이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거렸다.
“네가 생각해도 너란 여자, 꽤 비싸지?”
세정의 눈에 매달려 있던 무거운 눈물방울이 결국 지훈의 셔츠를 적시며 떨어졌다.
“그래도 괜찮아.”
“흑….”
눈물이 터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가 즐거운 목소리로 세정을 달랬다.
“너 정도면 비싸게 굴어도 돼. 나는 싸구려는 취급 안 하거든.”
“너는… 도지훈 너는 진짜, 제정신이 아니야.”
“맞아. 싸대기를 쳐 맞았는데도 너랑 또 키스하고 싶어 뒈지겠는걸?”
지훈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또렷하게 내뱉었다. 세정은 그의 품 안에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녀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그의 너른 가슴에 아예 확 묻어 버렸다.
지훈의 왼쪽 가슴에서 그녀의 뜨거운 호흡이 번졌다. 지훈이 그녀를 힘주어 안은 채, 주변을 보고 입을 열었다.
“뭘 봐, 이 씨발 새끼들아.”
끝이 잔뜩 올라간 그의 기다란 입꼬리에서 의기양양한 미소가 번졌다.
“커플이 사랑싸움하는 거, 처음 보냐?”
꽉 쥔 세정의 주먹에서 수표가 엉망으로 구겨져 떨렸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두꺼운 창문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엉망으로 그녀의 몸을 찔러 버릴 듯 내리쬐고 있었다.
매미가 방정맞게 쎄에, 울어 대던 초여름. 세정이 학교 내에서 공식적으로 지훈의 연인이 된 날이었다.
디 포 더티 (D For Dirty) | 김빠 저
https://ridibooks.com/books/23340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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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유명한 책이라 드디어 정독. 남주가 요즘 감성으로 범죄 수준인데, 한편으로 집착 혹은 순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기냥 이 한 장면 만으로도 충분히 가성비 나옴. 이건...특별하다! 김빠, 김빠, 김빠님 베스트셀러 작가는 다 이유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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