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린다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린다는 31세의 미혼 여성으로, 직설적이고 아주 똑똑하다. 철학을 전공했다. 학생때는 차별과 사회 정의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반핵 시위에도 참여했다.
우리는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린다가 등장하는 가능한 시나리오 여덟 가지 목록을 보여주었다. 톰 W 문제에서도 그랬듯이, 참가자들 일부는 시나리오를 대표성에 따라 순위를 매겼고, 일부는 확률에 따라 순위를 매겼다. 린다 문제도 톰 W 문제와 비슷하지만, 반전이 있다.
린다는 초등학교 교사다.
린다는 서점에서 일하고, 요가 수업을 듣는다.
린다는 여성운동에 적극적이다.
린다는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다.
린다는 여성유권자동맹 회원이다.
린다는 은행 창구 직원이다.
린다는 보험 영업사원이다.
린다는 은행 창구 직원이고, 여성 운동에 적극적이다.
반전은 확률 판단에 있다. 두 시나리오에는 논리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벤다이어그램을 생각해보자.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 창구 직원'이라는 집합은 '은행 창구 직원' 집합 안에 포함된다.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 창구 직원은 모두 은행 창구 직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린다가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 창구 직원일 확률은 은행 창구 직원일 확률보다 '반드시' 낮아야 한다. 어떤 사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할수록 확률은 낮아진다. 이 문제는 대표성 직관과 학률 논리가 상충하는 경우다....실험 참가자들이 빠짐없이 '은행 창구 직원' 보다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 창구 직원'에 더 높은 순위를 매긴 것을 보게 됐다..."논리하고 대표성을 붙여놨더니, 대표성이 이겼지 뭐야!"
이 책에 어울리는 말로 표현하자면, 시스템 2의 패배를 목격한 것이다. 설문지에는 두 가지 중요 항목이 동시에 들어가 있어서, 참가자를 논리 규칙의 연관성을 알아볼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 뒤이어 추가 실험을 실시한 결과, 참가 학부생의 89퍼센트가 확률 논리를 무시했다. 우리는 통계에 민감한 사람들에게서는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 확신하고,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의사 결정 프로그램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에게 똑같은 설물지를 돌렸다. 확률, 통계, 결정론에 관한 고급 과정 수업을 여럿 들은 학생들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응답자의 85퍼센트가 이번에도 '은행 창구 직원' 보다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 창구 직원'을 더 높은 순위에 올려놓았다.
둘 중 어느 경우가 흔하겠는가?
린다는 은행 창구 직원이다.
린다는 은행 창구 직원이고, 여성 운동에 적극적이다.
극도로 단순화한 이 문제로 린다는 일부 사람들에게 유명 인사가 되었고, 우리는 여러 해 동안 논쟁에 휘말렸다. 주요 대학 여러 곳에서 학부생의 약 85-90퍼센트가 논리와 상반되는 두 번째 항목을 골랐다.
톰W와 린다 문제 모두 응답자가 판단한 확률은 대표성(정형적인 모습과의 유사성) 판단과 정확히 일치한다. 대표성은 밀접하게 연관된 채 동시에 일어나는 한 무리의 기초적 평가에 속한다. 대표성 판단은 성격 묘사와 결합할 때 가장 논리적으로 일관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논리적으로 일관된다고 해서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럴듯하다.' 논리적 일관성, 그럴듯함. 발생 가능성은 주의하지 않으면 쉽게 혼동된다...발생가능성, 즉 확률을 무비판적으로 그럴듯함으로 바꿔 생각한다면, 시나리오로 앞으로의 일을 예측할 때 치명적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저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236-241쪽)
우리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흔히 보는 육면체 주사위에 네 면은 녹색, 두 면은 빨간색이 칠해졌다고 말해주었다. 이 주사위를 20번 던진다. 참가자들에게 녹색(녹)과 빨간색(빨)이 섞여 나열된 열을 세 개 보여주고 하나를 고르게 했다. 주사위를 던져, 이들이 고른 열이 실제로 나타나면 25달러를 딴다(고 가정했다). 세 개 열은 다음과 같다.
1. 빨녹빨빨빨
2. 녹빨녹빨빨빨
3. 녹빨빨빨빨
주사위는 빨간색 면보다 녹색 면이 두 배 많기 때문에, 1번은 대표성이 적다. 마치 린다가 은행 창구 직원이라는 것처럼. 2번은 주사위를 여섯 번 던진 경우인데, 녹색이 두 번 들어 있기 때문에 해당 주사위와 더 잘 어울린다. 그런데 2번은 1번 맨 앞에 녹색을 하나 추가한 것이라 1번보다 발생 가능성이 적다. '린다는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 창구 직원'을 말이 아닌 기호로 표시한 것과 같다. 이 경우도 린다 연구에서처럼 대표성이 지배해서, 응답자의 약 3분의 2가 1번이 아닌 2번에 내기를 걸었다. 그러나 두 가지 선택을 옹호하는 주장을 각각 들려주면, 대다수가 둘 중 옳은 주장(1번을 옹호하는 주장)을 더욱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저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246쪽)
'적은 게 많은 것이다'와 관련한 말들"그들은 아주 복잡한 시나리오를 짜놓고는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우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시나리오는 단지 그럴듯할 뿐이다.""비싼 제품에 값싼 사은품을 붙여 오히려 상품 가치를 떨어뜨렸다. 이 경우야말로 적은 게 많은 것이다.""대개는 직접 비교하면 더 신중하고 더 논리적이 된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정답이 코앞에 있어도 직관이 논리를 이긴다."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저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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