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픽션

백열 | 정은숙 저 - 여지는 천상 여자

by 럽판타지 2022. 12. 20.
728x90
728x90
SMALL

 

12월 2일 17시 32분 월정교

그들 앞을 무심히 지나가던 이휘가 갑자기 줄의 거의 맨 끝에 있던 여자 앞에서 멈춰 섰다. 평범한 여자였다. 몸집도 보통이고, 키도 보통. 치마저고리 앞에 모아 쥔 손은 물일을 많이 한 탓에 거칠었고, 걸친 옷 역시 그러했다.

  이휘가 그녀의 앞에 서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움찔거리는데, 묘하게 그 모습이 낯이 익었다.

  두근, 황제의 심장이 요란하게 박동했다.

  “고개를 들라.”

  두근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명을 받은 하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그 시간이 마치 영원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와 이휘의 눈이 마주쳤다.

  “……태휼!”

  여자의 입에서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비명을 지른 여자나, 이휘나 모두 놀랐고 심지어 도열한 하녀들 역시 깜짝 놀랐다. 감히 황제를 향해 반말을 지껄이다니, 그 자리에서 끌려 나가 치도곤을 당할 일이다. 그러나 이휘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타난 여자의 얼굴, 그 이름. 태휼…… 태휼!

  이휘가 저도 모르게 여자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태휼이라니? 그게 누구냐!”

  꿈속에서 미지의 여인이 그를 부르던 이름이 맞았다. 강렬한 직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 여자다! 그가 미치도록 쫓던 그 여자! 마침내 잡았다!
“선방 출신의 하녀더냐?”

  “그, 그러하옵니다.”

  “으음, 희한한 일이로고. 술에 취해서도 허튼 계집은 안지 않는 분이신데 어찌 선방 하녀가 눈에 드셨을까.”

  자사가 이유를 알 수 없어 중얼거렸지만 혼란스럽기는 여지가 더하였다. 조금 전 일어난 일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지고, 피가 발밑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태휼이었다. 분명히 그였다.

  2년 전 말없이 떠나가 버렸던 그. 잊으려 무진장 애를 쓰다 이제야 그 마음 사그라졌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게다가 황제라니! 그녀를 안고, 그녀와 살았던 남자가 이 나라의 황제였다니. 너무 당황스러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사가 뭐라고 떠들고 있긴 한데, 얼떨떨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제발 누가 이 상황을 설명해 줬으면 싶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폐하께서 성총을 주시려는 듯싶으니, 너는 꽃단장하고 폐하의 침실에 들거라.”

  “네? 제, 제가요?”

  비로소 정신이 든 여지가 반문했지만, 자사는 그를 듣고 있지 않았다.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급해진 자사가 제멋대로 중얼거렸다.

합본 | 백열 (전2권/완결) | 정은숙 저

https://ridibooks.com/books/1547000003

----------
맘먹고 쓴 19금. 스토리가 탄탄해요. 고구마 길지 않음.




728x90
728x90
LIST